히틀러(1889년~1945년, 당시 24세)
그곳에 1908년에 와서 1913년까지 청소년기를 보냈다. 목적은 미술학교 입학이었다. 비엔나미술학교(the
Vienna Academy of Fine Arts)에 두 번 응시. 두 번 다 낙방하고, 스물네 살 때인 1913년 미술가 되려는 꿈을
접는다. 아돌프 히틀러(Adolf Hitler)는 좌절 끝에 정치로 방향을 튼다. 히틀러는 그해 5월에 빈을 떠나 뮌헨으
로 이주한다.
요제프 스탈린(1878년~1953년, 당시 35세)
스탈린은 파파도플러스라는 위조용 여권 이름으로 폴란드를 떠나 비엔나에 1913년 1월에 도착한다. 스탈린
은 빈에서 한 달간 체류한다. 트로츠키를 면담하고, 니콜라이 부하린과 함께 <맑스주의와 민족 문제>를 쓴다.
트로츠키(1878년~1940년, 당시 35세)
트로츠키는 빈에서 1907년경부터 1914년까지 꽤 오래 살았다. 프라우다(Pravda, ‘진리’라는 뜻)라는 급진 공산
혁명 신문 편집인으로 활동하고 있었다.
요시프 브로즈 티토(1892년~1980년, 당시 21살)
비엔나의 남쪽 동네 비에너 노이스타트(Wiener Neustadt). 자동차 회사 다임러(Daimler)의 공장이 있었다. 그
곳에서 요시프 브로즈 (Josip Broz)가 일하고 있었다. 노동자의 일상은 고달팠다. 그 속에서도 계속 인생을 고민
했다. 어떻게 하면 다들 잘 사는가? 평등하게 사는 방법은 무엇인가? 장래의 나는 무엇인가? 스물한 살 청년으
로서는 당연한 물음이었다. 좋은 시절은 언제 오는가 하다가 제국군대에 징집됐다. 그에게는 찬스였다. 군대경
험이 그를 인물로 만들었다. 나중에 유고슬라브(Yugoslavia)의 지도자가 됐다. 티토 원수 마샬 티토(Marshal
Tito)다.
정신분석학자 프로이드
프로이드는 네 살 때 가족이 비엔나로 이주한다. 정신분석학자로서 승승장구한 그는 1913년
쉰일곱, 명예와 부를 다 쥐었던 시기였다. 그는 유대인이었고, 영원한 안전이 보장되지 않았
다. 1938년 히틀러가 오스트리아를 합병하자 결국 파리를 거쳐 런던으로 망명한다.
지그문트 프로이드는 그 이듬해 세상을 떠난다.